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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이 문 대통령을 공격하다.

박춘식 과장 2020. 6. 2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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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문통을 들이 받았다. 열린우리당에서 개혁단장을 역임했고,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비서관을 거친 조 교수는 대표적인 친노 폴리페서로 알려져있다. 

그런 그가 문재인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분양가상한제 때문에 전세난이 온 것을 보고, "대통령이 참로로부터 잘못된 신화를 학습했구나, 큰일 나겠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문통의 측근이 일본 부동산 붕괴를 따라갈 것이라고 믿고 있는 대통령의 생각을 듣고 꺼낸 말이다.

일본의 경우 수도 인근의 신도시의 집값이 하락했지만, 이러한 특징을 우리나라 수도권에 적용하기 힘들기 때문에 문통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조 교수의 주장일뿐, 필자도 부동산 하락의 가능성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친노 폴리페서로 구분되는 조기석 교수의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비판은 그만큼 상징적인 사건이다. 분양가상한제가 다양한 정책과 맞물려야하는데, 일방적인 법안도입으로 오히려 전세난만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조기숙 교수

대한민국의 교수. 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 교수이자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이다. 1959년 5월 14일 출생(61세)이며 고부군수이자 탐관오리 조병갑의 후손(증손녀)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아이오와대, 인디애나대에서 공부했다. 인천대 조교수를 지냈고 1997년부터 이화여대에 임용되었다.

2004년 4월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여 창당 정당개혁단장에, 2005년 2월 17일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비서관에 발탁되었다. 2006년 2월 비서관직을 사퇴한 뒤 이화여대로 돌아왔다.

2017년 『왕따의 정치학』이라는 과거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한경오를 비롯한 좌파들과의 갈등을 주제로 한 책을 발간했다. 그 뒤 여러 방송과 팟캐스트 등에서 많이 인터뷰했다.

 

 

학력

한성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아이오와 대학교 정치학 석사
인디애나 대학교 정치학 박사


경력
1990년: 이화여자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원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취임사 준비위원회 위원
2004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정보센터 소장 겸 국제대학원 교학부장
2005년 ~ 2006년 2월: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
2006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 국제학 전공 부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 국제학 전공 교수

 

생애

1959년 경기도 안양시에서 태어났다. 1982년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정치학 석사 과정을 거쳐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인천대학교에서 조교수를 지내고, 1997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

2004년 4월 열린우리당 창당 정당개혁단장을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취임사 준비위원회 위원,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 총선기획단 자문위원회 위원장, 정당개혁추진단 단장, 참언론을지지하는모임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2004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정보센터 소장 겸 국제대학원 교학부장 등을 지냈다. 2005년 1월 이기준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의 임용에 관련된 인사 파문이 일자, 조기숙은 "김대중 정부의 옷로비 사건을 보는 것 같다. 이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 따라 현 정부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2005년 2월 17일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비서관으로 발탁되었고, 2006년 2월 사퇴하였다.

2005년 9월 지역주의에 대한 시각 차이를 놓고 언론학자 강준만과 논쟁을 하였다. 2005년 11월 자신에 대해 왜곡을 일삼는 일부 언론에 대해서 최소한의 자위권이라도 행사해야 할 상황이라고 발언하였다.

2006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 국제학 전공 부교수가 되었다.

2006년 《월간조선》 11월호에 한말에 고부군수를 지낸 조기숙의 증조부 조병갑이 친일파라는 보도가 실리는데, 이에 대해 그는 증조부의 경력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는 해명을 하였다. 참고로 조병갑은 동학농민운동을 촉발시킨 탐관오리로 알려져있는데, 조기숙은 "증조부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오류일 수도 있다. 증조부는 역사의 희생양일 뿐이다."라는 내용의 논문이 학계에서 발표됐음을 근거로 증조부가 결백할 가능성을 주장한다. 조선일보 인터뷰 거부와 중앙일보 및 동아일보에 대한 절필을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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