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버렉카

윤미향, 악마를 보았다. (윤미향 프로필 소개)

박춘식 과장 2020. 5. 26. 10:17

최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의 횡령이 논란이다. 이용수 전 정대협 공동대표께서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인 윤미향 당선인이 기부금을 횡령했을 것이란 의혹을 제시했다. 

윤미향측은 3월 30일 이용수 할머님과의 통화에서 "할 수 있으면 기자회견 해봐라"라고 말하곤 만남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용수 할머님은 아이캔스피크의 실제모델로서 수요집회의 성금, 기금 등을 위안부 피해자와 함께 쓴 것이 아니고, 윤미향 당선인이 개인적으로 착복했다고 주장했다.

여러 증거가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다. 주택을 구입하거나, 자신의 아버지를 쉼터에 고용하는 등 대표의 직위를 이용하여 개인의 이득을 위해 사용한 과거가 드러난 것이다. 

작금의 사태를 보며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생각났다. 이병헌, 최민식 주연의 영화로서 사이코패스 범죄자인 악당이 살인을 저지르는 작품이다. 악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간, 재물을 수단으로 사용한다. 일말의 양심과 동정심은 갖지 않고 단지 자신만을 위해서 울고, 웃고 연기한다.

이러한 느와르적인 작품이 우리 사회에서도 발생했다. 윤미향 당선인은 그토록 "정의, 윤리"를 강조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일본을 비난하고 국제사회에 동조를 호소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코 묻은 학생들의 모금은 자신을 위해 사용되었고, 시위 중 배가 고프다는 이용수 할머님의 목소리는 "돈이 없다"라는 한마디로 묵살되었다.

백년 전 일어난 일본의 만행이 백년 후 우리나라 같은 민족에게서 또 한번 자행된 것이다. 이것은 국제사회의 우리나라의 신뢰는 물론, 역사에서 일본에게 닿아햐할 비판의 칼날도 거두어야할 정도의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이 겪은 수탈을 이용하여 같은 민족이 수탈을 하는 이 아이러니! 정말 소름돋고 악마라고 생각된다.

 

학력

1983년 ~ 1987년: 한신대학교 신학과 학사
1987년 ~ 1989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기독교학 석사과정 수료
2005년 ~ 2007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경력
1989년 1월: 한국기독교장로회 간사

1991년 11월: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간사
1992년 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간사
1997년 12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국장
1999년 8월 ~ 1997년 12월: 한국여성재단 사무처장
2002년 2월 ~ 2005년 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총장
2005년 2월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2012년 5월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관장

 

 

논란
딸이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해서 전액 장학금을 주는 ucla대학에서 진학했으나 "외국인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남편의 재심사건에서 일부 무죄판결받아 국가로부터 받은 형사보상금으로 부담했다고 밝혔다.


주택 등기부등본에 의하면 1995년 1월 수원 소재 한 빌라를 구입한 이후 1999년 10월 A아파트를 구입하여 1가구 2주택을 유지하다 2002년 2월 빌라를 매각하고, A아파트를 유지한 채 2012년 4월 경매를 통해 B아파트를 2억2600만원에 낙찰받고 이후 2013년 1월 A아파트를 1억8950만원에 매각했다. 두 차례 부동산 매매 과정에서 대출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자 윤미향 측은 "본인이 30여년간 일하면서 모은 예금과 적금을 깨서 지급을 하고 모자란 금액을 가족한테 빌린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앞서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 살던 아파트를 팔았다"고 밝힌 것과 다르다.


2014년 4월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책임사업인 '우물 파주기' 프로젝트 기부금을 모집한다면서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본인 명의 계좌를 공개하여 총 1757만원의 기부금이 모였지만, 1200만원을 베트남 측에 전달하고 차액의 사용처를 밝히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 출처 위키피디아

 


과거 횡령 의혹
1998년 한 위안부 피해자로부터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당했던 적이 있었고 이 사건으로 인한 배신감과 우울증으로 정대협을 4년간 떠나 있기도 했었다. 그 피해자는 윤미향에 대해 '우리 이름을 팔아서 번 돈으로 용산역 앞에 3층짜리 빌딩을 사뒀다'고 오해했고 그 고소장에 서명한 위안부 피해자는 8명이나 되었다.

- 출처 위키피디아

 

정의연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사례

사드 배치 논란 당시, 미국의 사드 배치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한 바 있었다.# 사드는 국익과 안보가 아니라, 미국의 무기장사 시장바닥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석기 석방 운동'을 진행하는 민중당은 윤미향의 부친이 펜션처럼 운영하던 쉼터에서 2019년 경기주권연대 출범식을 가졌다.# 국회의원 시절 이석기가 정대협 후원행사의 밤에 찾아와 윤미향의 남편 김삼석과 팔씨름하듯 손을 꽉 잡고 조우하는 사진이 공개된 적도 있다. 이석기가 남편 김삼석 씨의 학교 선배이긴 해도 딱히 친분은 없다고 했다.

윤미향을 종북이라 지적한 미디어워치가 고소를 당했지만, 명예훼손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1년 윤미향의 전대협은 김정일 사망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일제 과거사의 올바른 청산을 위해 남북 여성들의 연대가 더욱 절실한 때에 김 위원장의 서거로 큰 비탄에 빠져 있을 북녘 동포들을 생각하니 애도의 마음의 금할 수 없다" 라는 내용의 조전을 보냈다. 

반일,반미성향으로 위안부 할머니들과 반미 집회에도 자주 참석했으며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하지만 본인의 딸은 미국 유학 중이며 본인도 미국에서 종종 휴가를 즐겼다.

 

 

윤미향의 어록

-1992년 1월 8일 첫 수요시위에 위안부 할머니들은 몇 명 참석했나?: 처음에는 여성 단체 활동가들만 집회에 참석했다. 위안부 할머니 한 분이 처음 공개석상에 선 것은 그해 8월 14일이었다. 이 분이 고(故) 김학순 할머니였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처음 문을 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율을 느낀다. 

 

어려운 요청이었는데 이 분은 선뜻 공개 증언을 받아들였다. '당한 것만 해도 치가 떨리는데 일본 정부가 그런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발뺌하는 게 너무 기막혀서 그랬다'고 말했다. 그동안 숨겨졌고 은폐됐던 위안부 문제가 세상 바깥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날을 '위안부 기림일'로 정했다.

 


-초기에 위안부 할머니의 소재를 어떻게 파악했나?: 우리가 위안부 할머니 접수를 받겠다고 알렸을 때 누구도 자신이 피해자라고 신고하진 않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운을 뗐다. 주위에서 알까 봐 몸을 사렸다. 처음에 우리는 다섯 분의 할머니를 각각 만났다. 이 분들은 자기만 혼자 살아남아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당시까지 위안부 생존자가 매스컴에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삶에서 중시하는 가치라는 게 있다. 가정을 뒷전에 두고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헌신하는 당신의 심리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가? 공명심인가?: …신앙 같은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내 꿈은 목회자였다. 한신대 신학과를 나와 이화여대 대학원(기독교교육)에 다니면서 교회여성단체에서 일했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기생관광' 실태를 접한 뒤 현장에 데모를 나가면서 '정대협' 간사직을 맡게 됐다. 비록 목회자의 길로는 못 갔지만, 그런 마음으로 일했던 것 같다.


-남편은 대학 시절 함께 '운동'을 했던 사이였나?: 아니다. '수요집회'를 시작할 때 남자 참가자들이 없었다. 당시 일본 군부가 위안부에게 나눠줬던 콘돔인 '돌격 1번(突擊 一番)' 사진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한 젊은 남자가 그 사진을 보고 찾아왔다며 도와줄 게 없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지금은 해체된 '반핵평화운동연합'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이는 '수요집회'에서 나와 교대로 메가폰을 잡았다. 할머니들이 '둘이 결혼하면 좋겠구먼' 하며 바람을 잡았다. 할머니들이 중매를 선 셈이다. 일년 만에 결혼했으니까. 지금은 경기도 수원에서 지역신문사를 하고 있다.


-일본의 한 각료는 "미국도 전쟁에서 현지 여성에 대한 매춘과 강간이 있었고, 한국도 베트남전에서 그랬다. 뭐 다를 게 있느냐"고 말한 적 있다.: 어느 전쟁에서도 군인 개인 혹은 집단에 의해 성범죄가 자행돼 왔다. 미국이나 우리도 이런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군인 위안용'을 내세워 조직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나라는 일본밖에 없었다.

 

 

남편 김삼석 대표 종북주의 논란

김삼석은 현재 수원시민신문이라는 인터넷 언론 사이트의 창립자 겸 대표, 기자로 활동하는 중이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윤미향의 남편이다. 

과거 남매간첩단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및 내란 선동으로 징역 4년, 자격 정지 4년을 선고 받았고 16개 대학를 상대로 공갈 및 금품 갈취 혐의로 입건되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정대협 22주년 후원의 밤에서 대학 동기인 이석기와 손을 꼭 잡고 조우하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탈북자들에게 월북을 회유, 북한 혁명 가요를 부르는 등 종북주의자인 인물이다.


서울고등법원은 남매간첩사건과 관련하여 국가보안법위반 등으로 징역4년이 선고된 김삼석(51)에 대한 선고에서 일부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2년 집행유예3년 추징금 620만원을 선고하면서 여동생에게 징역1년 집행유예2년 추징금 230만원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