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식 과장의 여유로운 일상

남산의 부장들 해석(조커)

박춘식 과장 2020. 1. 26. 15:13

 

오늘은 쉬어가는 의미로 남산의 부장들 리뷰를 다뤄보겠다. 직접적인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해서 읽어주길 바란다. 

 

남산의 부장들은 감독의 철저한 네러티브가 이끌어가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이라는 배우들이 각자의 연기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감독이 전체 네러티브속에서 긴장감을 통해 관객을 이끌어가는 영화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느낀 남산의 부장들의 몇가지 특징과 그 해석은 아래와 같다.

 

당당하던 초반부의 김규평과 달리 후반부에는 어깨가 쳐지고 주눅들어있다.

 

1.호아킨 피닉스의 조커와 이병헌의 김규평

영화의 60% 이상은 김재규를 연기한 이병헌의 감정선에 초점이 맞춰진다. 곽도원(박용각 역할,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너도 나처럼 버림받는다"라는 초반의 대사는 앞으로 벌어질 권력의 암투과정에서 갈갈이 찢길 이병헌(김규평 역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미래를 보여주는 한마디가 된다. 

 

김규평은 권력을 쫓았던 5.16 군사정변 혁명조직의 일원이었지만, 한편으로 이성민(박통, 박정희 대통령)을 진심으로 보필하는 인물이다. 그는 고민을 말하는 박통에게 "각하 옆에 제가 있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김규평이라는 캐릭터의 핵심이다. 그는 아직까지 혁명이라는 순수성을 가진 인물이다. 비록 시간 앞에서 돈과 권력으로 빛바랜 혁명이지만, 그는 그 순수성을 믿고 있다.

 

하지만, 그 순수함은 권력 앞에서 무너지게 된다. 이희준(곽상천 역할, 차지철 경호실장)은 권력 앞에서 그를 무시한다. 도청을 통해 그 순수함의 이단성을 지적하고 박통의 권력이 그 순수함을 버리도록 만든다.

 

 

이 과정에서 김우평은 열등감, 패배감, 분노가 마음에 서리게 된다. 영화 <조커>에서 아서 플렉은 머레이를 향한, 사회를 향한 폭발 전까지 담담히 열등감에 침전한다. 

 

사장의 모욕, 동료의 모욕 앞에서 아서 플렉이 저항할 힘은 아무것도 없다. 이러한 패배감 속에서 한자루의 권총은 그에게 두려움보다는 자유라는 해방감을 제공한다. 

 

 

김우평도 마찬가지이다. 이전까지 혁명이란 대의를 위해 자신을 믿는 친구를 지키는데 노력한다. 하지만 혁명의 순수함을 지킨 결과는 권력의 배신과 동료의 모욕이었다. 

 

그러자 김우평도 한자루의 권총을 잡게 된다. 자신이 지켜주려 노력하단 박용각을 곽상천보다 앞서서 제거한다. 또한 자신을 내내 지적하던 곽상천의 오른손에 권총을 향하고, 그가 옆에 있겠다고 맹세한 권력에 비수를 꽂는다.

 

<조커>와 <남산의 부장들>은 아래처럼 기승전결이라는 감정의 상승을 통해 진행된다는 점에서 비슷한 플롯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선의 고조

-폭발의 카타르시스

-자유

 

 

2.혁명의 의미

곽상천과 김규평은 워싱턴 기념비를 걷고, 자유의 상징 링컨 앞에서 혁명을 논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만, 누가 혁명을 시작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표면적인 대화를 나눈다.

 

필자는 이러한 대화에서 혁명이 지니는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곽상천과 김규평에게 혁명이란 대의명분이 아니었을까? 혁명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마치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친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곽상천은 남산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대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넣었다. 

 

김규평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박통의 옆에서 보좌한다는 명목으로 숱한 생명을 짓밟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혁명의 의미'를 망각한다. 뜬근없이 "너가 먼저 혁명하자고 말하지 않았냐?"라는 대사는 이러한 혁명의 순수함이 변질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혁명이란 대의명분에 지나지 않고(설사 진심이었어도 이미 그 의미는 퇴색되었다) 세상을 바꾸는 혁명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혁명이 된 것이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이름만 바뀔뿐"

 

 

3.공간이 주는 모순성

또 한가지 재미있는 해석은 공간이 주는 모순성이다.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다양한 실제공간들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남산 중앙정보부, 청와대, 궁정동 안가, 미국의 워싱턴 기념비, 프랑스 등이 등장한다. 표면적으로 미국은 자유를 의미하고 우리나라는 독재의 공간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아래처럼 각 공간은 표면적인 특징과 반대의 성격을 가진다.

 

-미국은 링컨, 워싱턴 기념탑, 공원 등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보여준다. 곽상천은 "자유롭다"라면서 미국의 자유를 칭찬한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나라의 독재를 묵인한다. 또한 레짐체인지(Regime Change)를 뜻하는 대사의 발언을 통해 강압적인 국제정세의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독재의 국가로 보여진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미국 하원의원의 내한행사 때 연회장의 모습은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이다. 자유롭게 어울리며 웃고 떠드는 사람들, 물론 고위층 인사들의 자유로움이지만 박통과 곽상천의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대사들과는 대조적으로 보인다.

 

-통행금지로 차가 없는 효자동은 억압적이지만 뻥 뚫린 길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로 갈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다.

 

 

4.결론

<남상의 부장들>은 웰메이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전작 <마약왕>에서 느낀 실망감과는 다른 강약조절이 완벽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마약왕>이 강강강만을 고집하여 피곤하고 감정의 변화가 없던 영화인 반면, 이번 작품은 매우 부드럽게 시작하여 10.26사태를 감정의 카타르시스로 끌어올린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적절히 상상력을 첨가하여 극적인 요소를 집어넣은 것도 매끄러운 연출을 위한 좋은 의사결정으로 보인다. 혹자들은 본 영화가 총선 전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한 영화라고 말한다. 그 진실은 알 수 없으나, 필자가 본 <남산의 부장들>은 단지 과거의 역사를 비판하기만하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역사 속 권력들이 지닌 부패성을 고발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이름만 바뀔뿐"이라는 대사가 권력의 속성에 대한 감독의 시선을 보여준다. 

 

 

권력은 신군부로...